서양 미술사의 시기별 구분: #5 후기인상주의 미술, 상징주의 미술
12) 후기 인상주의 미술(Postimpressionism art): 19세기 후반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생하 미술 사조
1882년 인상주의 화가인 마네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훈장을 수여 받고, 1886년 인상파 화가들은 그들의 마지막 그룹전을 여는데, 이는 이제 인상주의 화가들이 대중에게 인정받고, 받아들여졌으며 성공의 길로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이제 이들의 인상주의는 더이상 전위적이고 진보적인 미술 운동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 전위적이고 진보적인 미술 운동의 역할은 19세기 후반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 후기 인상주의는 인상주의의 영향으로 그 시작점을 찾아볼 수 있지만 인상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미술 사조를 형성하게 되어 탈 인상주의라고도 불리게 된다. 후기 인상주의 작가들은 주의의 영향을 받아 그 단계를 거치면서도 그 양식의 한계에 만족하지 않고, 다양한 방향으로 인상주의를 넘어서게 된다. 후기 인상주의라는 이 명칭은 1880년대 이후의 중요한 모든 화가에게 해당되긴 하나, 보다 더 특별한 의미에서는 인상주의의 단계를 거치면서도 그 양식의 한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갖가지의 방향으로 인상주의를 넘어선 일군의 화가들을 가리킨다. 후기 인상주의는 인상주의에 반발하여 생긴 사조가 아니며, 인상주의를 시점으로 발전하면서 새로운 미술 사조를 이루게 된 것이다. 그들은 ‘마네 혁명’의 효과를 거부하기는 커녕 그 혁명을 한층 더 완벽히 밀고 나가려고 했으므로, 후기 인상주의는 본질적으로 1860년대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과 같은 그림으로 시작된 발전의 후기 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폴 세잔, 쇠라,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툴루즈 로트랙 등이 있다. 이들 대부분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은 인상주의 선배들의 영향과 지도 아래에서 성장하게 된다. 특히 이들 중 세잔은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발전하나, 이 후 ‘견고하고 영속적인'것을 추구하는 그림을 그리게 된다. 대상의 본질적인 구조와 견고함, 지속적인 것의 추구 이것이 바로 세자의 미학적 자세였다 이러한 특징은 [과일접시가 있는 정물], [생트 비투아르 산], [목욕하는 사람들]에서 잘 드러난다.
쇠라는 인상주의를 세잔과 ‘견고하고 영속적인' 것으로 발전시키려 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으나 세잔과는 다르게 추구하여 간다. 그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찰나적인 ‘인상'이 아닌 질서와 영속성의 추구를 통해 그의 캔버스를 체계적이고 질서적인 ‘점묘'로 표현하였다.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미역 감는 사람들]이 그의 대표작이다. 쇠라는 예술은 체계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것은 [미역 감는 사람들]에서 보면 찰나적인 ‘인상’과는 정반대로 확고하고 단순한 윤곽, 해이한 모습으로 고정된 인물을 표현하고, 영원한 안정감과 필촉까지도 질서와 영속성을 추구하였다.
반 고호는 세잔과 쇠라가 인상주의를 보다 엄격하고 고전적인 양식으로 표현한데 반해, 정서의 표현이 그의 주요 관심사였다. 그림은 그의 개인적 정서를 담는 그릇이라는 사적인 리얼리티를 탐구하였다. 대표작으로는 [감자를 먹는 사람들], [강], [누런 밀밭과 사이프러스 나무], [자화상]등이 있다.
폴 고갱 역시 처음 그림을 인상주의 작가들의 그림의 영향을 받고 함께 활동하다가 점점 자신만의 그림 풍을 확립하게 된다. 그의 화풍은 인상주의를 넘어선 대담한 진전이었고, 1889년에 이르러 종합주의(Synthetism), 또는 상징주의(Symbolism)라고 불리는 새로운 운동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후기 인상주의라는 용어는 1910년 전시회의 이름인 ‘마네와 후기 인상주의'에서 처음 나왔고, 쇠라, 세잔, 반 고흐, 고갱 등 이미 세상을 떠난 후 유작으로 전시된 작품들 통해 붙여졌다.
13) 상징주의 미술(Symbolism art): 1880년 전후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발생하여 유럽 전역에서 나타난 미술 사조
상징주의 미술가들은 자신을 스스로 나비파(Nabis, 예언자를 뜻하는 히브리어)부르기도 했다. 그들의 주목할 만한 점은 수기 인상파의 목표를 이론적인 형식으로 명확하게 설명하고 정당화했다는 점이다. 이런 부분에서 모리스 드니는 20세기 화가에게 있어 ‘신조의 제1조’에서 “ 그림이란 것은 어떤 군마나 여성의 누드 또는 어떤 일화이기 이전에 본질적으로는 특별한 질서 속에서 여러 빛깔로 덮인 평면이다.”라고 말하였다. 상징주의 화가들은 자연적인 관찰보다는 내면적인 비전을 중시하였다. 당시 유럽의 과학의 절대적 신뢰, 이성의 강조, 물질주의에 반하여 인간의 내면세계와 감성, 그리고 상상력을 중시한 미술 사조로 문학에서 그 움직임이 더 또렷하였다.
당시 미술계의 주류로 자리 잡은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의 정확한 자연에 대한 관찰과 과학적 근거를 거슬러 상징주의 미술가들의 관심은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 꿈, 신화, 전설, 죽음, 성(性)과 같은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주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작가의 주관적 해석에 근거하여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상징주의 미술품들은 작가들의 주관과 개인적 특성 따라 표현되어 작품들의 양식적인 공통점을 하나로 묶기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분위기를 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프랑스 파리의 구스타브 모로, 퓌비 드 샤반과 오딜롱 르동이 있고, 벨기에의 페르랑 크노프와 에드워드 번 존스가 있다.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발생한 상징주의 미술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스위스의 아르놀트 뵈클린, 벨기에의 제임스 앙소르. 그리고 노르웨이 출신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 오스트리아의 구스타프 클림트가 있다.
상징주의 미술은 후에 초현실주의 미술과 추상주의 미술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상징주의 미술은 작가의 주관에 따른 자유를 줌으로 따른 단순 외부 세계의 재현이란 틀과 한계를 넘어 작가의 개성적이며 순수한 작품 세계로 들어서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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