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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위대한 미술가

세기의 위대한 화가_피카소_2편 마지막 이야기

by 닌자4js 2023.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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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위대한 화가_피카소(Pablo Ruiz y Picasso, 1881 10 25~1973 4 8일 스페인 출신의 프랑스의 화가) _2편 마지막 이야기 ( 2편으로 구성)

 

작품 구상 중인 피카소

 

1편에 이어서

이 실험 시대는 루브르 박물관을 출입하면서 고대 이집트 미술과 전 로마의 이베리안 조각, 그리고 아프리카 흑인 조각에 깊은 감화를 받게 되어서이다. 그리고 1907년 파리에서 열린 세잔 대회 고전은 대상의 구체적인 해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 실험 시대의 대표작 [아비뇽의 처녀들]은 피카소 전 시대를 통한 최초의 혁신이라고 볼 수 있다. 직선적, 평면적으로 분할된 면 구성과 화면에서 다섯 여성들은 기묘한 자태에 이상한 모양을 띠고 있어 당시에는 실로 충격적인 표현이었다. 이 작품의 여성들의 마스크는 이베리안 조각과 아프리카 흑인 조각에서 옮겨져 온 것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이 작품은 완전한 입체의 기하학적 엄격성에 도달하기 위한 과도기적 작풍이었다. 니그로 시대란 과도기를 거쳐 접어든 본격적 입체파 시대는 피카소 생애를 통해 가장 고전주의적 이성의 지배 아래 자신을 스스로 옭아맨 시대라고 말해지기도 한다. 어느 때보다도 구성적 경향에 집착하는 시기였다. 청색과 적색 시대에는 피카소는 어떤 의미에서는 색채 화가로 치부될 수 있을 것이나, [아비뇽의 처녀들]을 거치면서구성으로 더 치닫게 된다. 1910년경부터 색채의 배제라는 큐비즘의 공통성이 피카소의 작품에서 아주 현저하게 나타나게 된다. 대상에 대한 주도한 분석적 태도는 자연 색채에 대한 무관심을 초래한 것이다. 그의 연구는 대상 파악의 새로운 인식 개념을 가져오는데, 이는 바로시점의 복수화, 여러 시점에서 동시에 대상을 파악한다는 이론을 만들어 내게 된다. “감각적이기보다는 두뇌 적인 작품을 창조한다라고 아폴리네르가 큐비즘을 정의한 것처럼 인식에 의한 대상 파악의 방법을 추구하게 된다. 대상의 여러 각도를 해부해 가면서 1910년에서 1912년까지 분석적 큐비즘 시대에 피카소는 그의 모든 작품을 철저한 대상 분석의 방법을 적용해 간다. 1912년경부터 1916년까지의 종합적 큐비즘에 와서는 전에 치중하던 인물에게서 벗어나 정물을 모티브로 많이 사용하게 된다.

피카소의 생애를 통한 변용의 계기는 환경의 변화에서 연유된 것이라 할 수 있고, 활력소는 여성이며 새로운 애정은 언제나 새로운 예술에의 모험을 동반해 왔다. 큐비즘으로 대변되는 실험 시대를 거치면서 자신의 풍부한 상상력과 감수성을 발휘하는 변용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얻어진 고전에의 복귀는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깊은 감명으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카소의 작품이 전부 고전풍으로 한정된 것은 아니었는데, 앵그르 풍의 고전적 경향과 종합적 큐비즘 경향의 작품이 공존하게 되는 피카소 생애를 통해 가장 난해한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이다. 단계적인 과정이 아닌, 같은 시기에 고전풍과 큐비즘이 공존하는 도착 현상을 목격하게 되는데,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 [3인의 악사], [창 앞의 테이블] 등이 있다.

1937년 피카소 중기의 최대 작품이라고 일컫는 [게르니카]는 쉬르리얼리스트의 영향으로 환상을 통한 불안 의식이 반영되고, 피카소의 현실 세계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을 보여준 작품이다.

피카소 변용 시대의 후기에 속하는 안티브와 발로리스에 체재했던 시기는 종전과 더불어 새로운 연인 프랑스와즈 지로와의 생활이 시작된 때이기도 하다. 지로와 그녀와의 두 아이를 모델로 행복했던 시기에 [어머니와 오렌지를 가진 아이들], [끄로뜨와 파로마], [두 살의 끄로뜨], [꽃의 여인] 등과 같은 자전적 기록의 작품들이 나왔다. 이 시기에는 석판화와 도기 제작에도 깊은 관심을 나타내었고, 긍정적인 유희 정신이 비극적인 사회적 관심을 압도해 갔다. 1950년 한국 전쟁으로 인한 [한국의 학살], [전쟁], [평화], [비둘기] 등의 작품 외에는 그의 만년은 유희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났고, 거장들의 작품에 대한 일련의 표절과 [화가와 모델]로 대변되는 자전적 기록들이다. 들라크루아와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표절하면서 피카소는 그의 풍으로 재현해 놓고 표절 작품들이 단수가 아닌 연작 형식으로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다. 한 주제를 풍부하게 해석해 가는 수많은 변주의 시리즈에서 이미 표절이란 윤리를 극복해 보이는 피카소 표절의 특수성을 만나게 된다. 이 표절에 대표작은 벨라스케스의 [궁정의 시녀들], 1957년 여름 4개월에 걸쳐 58점의 유화로 변주되어가고 있었다. 그림이 제작되어 가면서, 점차 벨라스케스에 의한 궁정의 풍경은 피카소의 아틀리에에서 그를 둘러싼 연인과 아이들의 일종의 가족도로 탈바꿈되고 있다. 여기서 등장한 여인은 54년부터 그와 생활하게 된 자클린느 록크였다.  록크의 등장으로 피카소의 예술은 더욱 긍정적이고 유희적이며 때로는 외설스러운 도취의 세계로 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초기의 청색 시대가 밤의 시대로 규정되었지만, 만년은 생명의 찬가로 점철되는 수많은 작품을 통화 낮의 시대로 명명되어야 할 것이다. 말년의 그의 작품 [벌거벗은 여자와 음악가], [잠자는 나무와 엿보는 남자] 에서는 피카소의 에로티시즘은 유희적 특성과 더불어 잘 표현되어 진다. 만년에 이를수록 더욱 격한 톤으로 흐르며, 자학성을 띠는데, 이는 무기력한 예술가와 젊은 모델의 풍부한 육체를 대비시킨 [화가와 모델] 연작 속에서 발견되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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